원불교송정산건국론의 발표
건국론은 1945년 8․15 광복을 맞이한 직후의 정국 상황을 관망하던 정산종사가 온 국민이 서로 단결하고 화합하여 광복된 이 나라의 건국이 순조롭기를 염원하면서 이 민족에게 제시한 탁월한 경륜이 담긴 글이다. 건국론은 광복 직후인 1945
Ⅰ. 원불교 정산종사(정산송규종사)의 업적
정산 송규(1900-1962)종사는 어떤 인물인가를 그의 건국론을 고찰하기에 앞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. 왜냐하면 정산종사를 아는 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건국론을 처음 대하는 이는 건국론의 저자인 송정산에 대하여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. 여기에서 원불교 교
원불교송정산건국론의 집필배경
ㄱ) 「건국론」이 집필된 1945년 10월의 ‘해방공간’은 민족국가 건설과정이면서도 38도선의 획정, 좌우익 정치세력간의 대립 등으로 민족 분단의 위험이 내재한 시기였다. 따라서 이 시기에 집필된 「건국론」은 곧 통일민족국가 수립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.
산주의는, 무산계급이 유산계급을 무력으로 제거하고,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하여 평등한 무산계급의 사회를 실현하려고 한다. 즉, 투쟁의 전쟁만이 건설을 가져온다는 모택동의 사상은 정산 사상과는 대조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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Ⅱ. 원불교송정산건국론의 시대배경
1945년 8.15광복
Ⅰ. 원불교송정산건국론의 정신
1. 마음의 단결이 없이는 「완전한 국가, 강력한 민족을 감히 바랄 수 있으리오?」라고 시작한다
건국은 단결로서 토대를 삼은 뒤 우리의 심지(마음)의 명랑함이 없으면 장벽이 생긴다고 한다. 장벽은 「각자의 주의에 편착하고 중도의 의견을 받지 아니
산정에 이사하여 정산의 대에까지 이어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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Ⅱ. 송정산(원불교)의 교정확립기
교화 및 교정확립기는 정산종사가 종법사에 취임 한 1943년부터 열반하게 되는 1962년까지로 볼 수 있다. 정산종사는 대종사 열반(1943) 후 종법사직에 올라 교화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교단을
원불교)의 창립
불법연구회는 1916년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의 농민조직에서 비롯되었다. 박중빈(소태산,1891-1943)을 중심으로 하여 종교적인 동기에 바탕하여 출발한 이 조선인 농민조직은 절약과 근면저축을 통하여 모아진 자금으로 1918년 초에는 마을 앞의 간석지를 개간하기 시작하여 1년 후에
산의 儒家․仙道․佛敎사상에 대한 知的, 信仰的 기반이 원불교의 사상과 교리형성에 절대적 요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. 정산은 1943년 소태산이 열반한지 5년 후인 1948년에 圓佛敎 敎憲을 제정하여 「불법연구회」를 「圓佛敎」로 개칭 하였다.
Ⅱ. 송정산(원불교)의 생애
정